이름: 신호철 (hozol@msn.com)
홈페이지: http://liturgia.org
2008/2/1(금) 18:19 (MSIE7.0,WindowsNT5.1,.NETCLR1.1.4322,.NETCLR2.0.50727,InfoPath.2,.NETCLR3.0.04506.30,.NETCLR3.0.04506.648,.NETCLR3.5.21022) 85.39.34.53 1280x800
시편화답송의 본질과 형식에 관하여  
           시편은 먼 옛날부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배로 불리워질 만큼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사랑받아온 하느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의 노래이자 예수님 안에서 부르는 우리들의 노래입니다. 이러한 시편의 참된 가치가 시대를 지나면서 잊혀져갔고 그것을 다시 회복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큰 결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본당 전례에서, 말씀의 선포인 시편화답송과 다른 화답송 형식의 노래들(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을 '열린 형식'(forma aperta)이라는 형식적 유사성으로 인하여 서로 혼동하는 모습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입당 행렬의 길이에 맞게 입당성가의 절 수를 늘이거나 줄이듯이 '미사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고 하여 시편화답송으로 부르는 시편 구절을 일부 빼고 부르는 등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전례법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귀중한 말씀의 선포인 시편화답송의 본질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래의 짧은 글에서는 전례법적인 근거를 들면서 정답이 무엇이냐를 얘기하기 이전에, 먼저 시편이 무엇이고 시편화답송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였고, 글의 맥락이 자연히 흘러가는 가운데에 전례법적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논지를 보다 용이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하다' 체로 서술하였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목차]

1.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루어진 시편 해석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
   1) 유대교 전통에서의 시편
   2) 예수님의 시편
   3)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재해석된 시편
   4) 시편은 노래다.

2. 시편화답송
   1) 시편화답송은 응답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말씀의 선포이다.
   2) 말씀전례 중 시편을 노래로 선포하는 두 가지 형식

///////////////////////////////////////////////////////////////////////////////////

'시편화답송'(詩篇和答頌; Psalmus Responsorialis)의 본질과 형식에 관하여

1.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루어진 시편 해석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us)

1) 유대교 전통에서의 시편

           먼 옛날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서 전례 중에 시편을 노래로 기도하였으며 전례집회가 끝난 후에도 생활 중에 대부분의 시편을 외워서 암송하고 묵상하였다. 시편기도는 하느님을 2인칭 단수(‘너’, ‘당신’)로 가까이 부르며 인생에서 겪은 기쁨과 고통을 웃음과 눈물 속에서 적나라하게 고백하며, 삶이 가져다 주는 극도의 위기와 난관을 호소하고 한탄하면서도 결국에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희망으로 극복해내고야 마는 신앙인의 처절할 정도로 진실하고 눈물겨운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다.

 2) 예수님의 시편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유대교의 전통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셨으며 즐겨 시편을 외워 기도하고 묵상하셨음을 복음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당신 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곧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외치신 것이 바로 시편 21(22)편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1ㄱ) 이 시편은 총 31절로 이루어진 제법 긴 시편이며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숨 한번 몰아 쉬기 위해 불 같은 고통을 참아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전체 시편을 끝까지 외우실 기력이 없으셨고 다만 1절, 그것도 절반뿐인 전반부만을 간신히 외치신 후 숨을 거두셨다.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외우고자 하셨던 이 시편의 전체내용은 죽음의 위험에 처한 한 신앙인의 이야기이다. 사방에서 사나운 맹수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신을 빈정거리고 짓밟지만 그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손과 발이 마구 찔려 죽음의 먼지 속에 던져진 이 몸은 뼈 마디마디 드러나 셀 수 있는데 원수들은 이 몸을 노려 보고 내려다 보며 겉옷은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17ㄴ-19)

           그야말로 절망의 순간, 이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그는 처절하게도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부활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땅 속에 잠자는 자들도 그 앞에 엎드리고 먼지 속에 내려 간 자들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오고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30-32ㄱ)

           이 시편을 평소에도 외우셨고 이제 지극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앞두고 이 시편을 떠올리신 예수님께 이 시편은 이미 처음부터 당신의 시편이었으며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다.

 3)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재해석된 시편

           부활하신 후 길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시편의 노래들은 당신을 두고 한 예언임을 가르쳐 주신다: "그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루가 24,25-27) ...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44) ..."

           이에 따라,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교부들은 시편을 주석하면서 한결같이 시편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고 설정하며 시편은 예수님의 시편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시편을 읽으며 그 안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생애와 빠스카 사건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 유대교 시편이 가지고 있던 주제와 강조점이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빠스카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바뀌어져 해석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편, 시편에서 발견되는 적개심과 저주의 말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용서와 사랑의 계명’과 상충됨을 발견한 교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는 흔적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사랑의 분노’로 보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씌어진 시편이 안고 있는 ‘한계’로 해석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용서와 사랑 안에서 이 유대교 시편의 한계가 극복되고 완성되었다고 본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ㄱ).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전례문에서는 시편에서 저주와 독설의 구절들이 나올 경우 이를 생략하고 다음 구절로 건너뜀을 볼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로 기도하려고 하였던 그리스도교의 전례전통 안에서 시편은 유대교의 시편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편이며,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시편을 노래하는 공동체에 있어 그 시편은 예수님의 시편이기에 이제는 바로 그들의 시편이 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시편은 그 가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보배처럼 다루어지고 사랑 받아 왔으며, 무엇보다도 시간전례와 미사라는 두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시편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4) 시편은 노래다.

           우리말로 “시편”(詩篇)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미쯔몯"은 ‘선율’이라는 뜻이다. 시편은 원래 ‘노래가사 모음집’으로서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 때에 사용될 목적으로 엮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각 시편에는 그 시편을 어떤 선법으로 부르는지 그리고 어떤 전례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이스어 성서 ‘70인역’(septuaginta)에서는 이 히브리어 “미쯔몯”을 “ㅍ살모스”(ψαλμóς)로 옮기고 있는데 이는 원래 ‘손가락으로 현악기의 줄을 퉁기는 것’ 즉 ‘기타족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또한 ‘기타족 악기의 반주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의미하였으니 더 나아가 ‘성가’(cantus sacer)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라틴어 성서 ‘불가따’(vulgata)에서는 이 “ψαλμóς”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살무스”(psalmus)라고 옮겼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 보면, “시편”(詩篇) 보다는 오히려 “찬미가사집”(讚美歌詞集)이라는 번역이 더 낳지 않을까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것이 선법과 전례에 대한 지시문과 함께 실려있는 노랫말이었다는 점과 실제로 긴 유대교 역사를 통해서 노래되어 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가’(詩歌)가 아니라 선율이 붙어있는 노랫말 즉 ‘가사’(歌詞)라고 보아야 하고, 그렇게 볼 때 이 모음집의 본래 성격이 제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구약 성서를 통틀어 이렇게 노래 가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시편이 유일하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도, 성서의 시편을 전례 중에 선포할 경우 이 텍스트의 본성(= 노래 가사)에 따라 노래로 선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가르친다. [cfr. Ordo Lectionum Missae, Roma 1981 (= OLM), n. 20]

           한편, 시편이 원래 노래 가사였고 그래서 그 본성을 올바로 살려 선포하기 위해 노래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단순히 그 뜻만 옮겨내어서는 안되며, 노래 가사로 사용될 수 있도록 음악적 운율이 갖추어지도록 고려하여 번역해야 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시편 번역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성서학자와 국문학자만이 아니라 성음악 전문가도 함께 참여하여야 할 것이며, 이렇게 시편이 음악적 운율을 갖추어 번역되고 거기에 합당한 선율로 작곡되어 전례 중에 노래로 선포될 때에, 비로소 시편은 다시 살아 역동하게 될 것이다.

2. 시편화답송(Psalmus Responsorialis)

1) 시편화답송은 응답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말씀의 선포이다.

           독서들 사이, 곧 제1독서 후에 부르는 시편 노래는 ‘시편화답송’(Psalmus Responsorialis) 혹은 ‘층계송’(Gradualis) 또는 ‘응송’, ‘시편응송’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주로 “시편화답송”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시편화답송’ 이라는 이 명칭이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다음의 두 가지 맹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편화답송의 본문이 항상 시편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로, 우리말로 ‘화답송’ 혹은 ‘응송’이라고 번역되는 라틴어 Responsorialis는 시간전례에서 성경소구에 ‘응답하여 바치는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의 영향으로 미사 중 시편화답송의 화답송(Responsorialis)도 마치 제1독서의 내용을 묵상하고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지기 쉽지만 시편화답송의 경우 화답송이란 말은 시편구절을 노래할 때에 회중이 후렴구로 사이 사이에 응답하는 노래형식을 가리킬 뿐이다. 더욱이 시편화답송은 제1독서에 딸린 응답가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성서(시편)의 선포이다.[cfr. OLM 19]

           ‘시편화답송’이란 시편을 화답송의 형식으로 노래하여 선포하는 것이며(당연히, 말씀전례 중 시편을 선포하기 위한 형식으로 화답송 외에 다른 형식도 있다), 제1독서와 제2독서를 독서자가 선포하고 복음을 부제나 사제가 선포하는 반면 시편화답송은 성가대와 회중이 노래하여 선포하는 것이다. 미사 중 성서의 선포는 제1독서, 시편화답송, 제2독서, 복음 이렇게 모두 네 차례 이루어진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이 4가지의 말씀 선포는 하나의 단일한 전례 예식 안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상응하고 있다. 시편 화답송이 그와 함께 선포되는 다른 성서의 말씀과 유기적으로 상응하고 있는 것이지, 그저 독서에 딸려 있는 부차적인 응답가인 것은 결코 아니다.

           시편화답송이 성서의 선포이므로 시편구절을 노래할 때에 가사(성서본문)의 전달에 무척 신경 써야 하며 그래서 시편구절의 선포는 주로 독창자의 임무가 된다. 시편구절을 노래하는 독창자는 성가대석이 아니라 "독서대"에서 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cfr. OLM 22]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한 행렬동반성가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말씀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단순한 응답가가 아니라 말씀의 선포이므로 시편화답송을 다른 성가로 대체하여서는 안된다. 시편 화답송은 “말씀 전례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하느님 말씀을 “노래하여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편 화답송을 대신하여 다른 창작곡을 부른다든지 혹은 다른 세속적인 가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편화답송이 성서의 선포인 이상 Ordo Lectionum Missae에 지정되어 있는 시편구절의 모든 내용을 충실히 선포해야 하며 함부로 늘이거나 줄여서는 안된다. 보통 행렬동반 성가(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들이 해당 행렬의 길이에 맞게 신축성있게 노래의 길이를 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형식으로, 특히 화답송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매 후렴 사이에 부르는 각 절을 적절이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부르는데, 이렇게 임의로 행해지는 구절 첨삭을, 형식이 동일하다고 하여, 시편화답송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시편화답송은 행렬동반 성가가 아니라 성서의 선포이며, 이것을 화답송 형식으로 부르는 것은 이 말씀의 선포에 회중이 후렴을 노래하며 이 말씀 선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2) 말씀전례 중 시편을 노래로 선포하는 두 가지 형식

           말씀전례에서 시편의 선포는 노래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을 노래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화답송(和答頌; responsorialis) 형식과 ‘직송’(直頌; directus) 형식, 즉 응답 없이 곧바로(modo directo) 부르는 형식이 그것이다. 둘 중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이 화답송 형식인데, 시편가 혹은 시편 독창자가 시편 구절을 부르고 온 공동체가 후렴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시편을 직송 형식으로 부를 때에는 회중이 응답하는 부분이 없으며, 시편가나 시편 독창자가 시편을 독창하고, 그 동안 공동체는 그것을 듣고 있든지 아니면 같이 부른다. 이렇게 크게 나누어진 두 형식에 따라 6가지 정도의 구체적인 방식들이 제시되기도 한다.

           시편 구절을 노래하거나 아니면 그 후렴만을 노래하거나 간에, 이렇게 시편을 노래로 바치는 것은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묵상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제 목짧은댓글이름첨부작성일조회
10   시편 화답송 독창자는 독경대에서 노래를 부를 ...   이대성   2009/02/22  6687
9   화답송 시편에서 두 절을 빼고 부르는 습관??   이대성   2008/01/31  7132
8       시편화답송의 본질과 형식에 관하여   신호철   2008/02/01  6638
7           다윗이 지은 시편이 교회음악에 끼친 영향   이대성   2008/02/01  6559
6   시편이라는 용어에 관해   이대성   2006/02/06  5468
5   특송???   이대성   2005/08/11  4769
4       Re..특송???   신호철   2005/08/16  4841
3           Re..특송???  8 박은경   2007/06/19  4262
2               Re..특송???   박은경   2007/06/20  3886
1   게시판 점검 완료. 현재 정상 작동.   이대성   2005/06/02  3985

 
      목록 쓰기
 
   

사이트 이름 : 성음악 다락방
관리 담당자 : 이대성(요한)
주       소 : Via Enrico Cavacchioli,37
우 편 번 호 : 00123 ROMA ITALY
E-Mail      : dareya33@hotmail.com

Web Editor  : KinGsAce